[전지성의 레이더L] 칼에는 눈이 없다

  • 입력 : 2016.12.19 17:56:39     수정 : 2016.12.20 1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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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17일 토요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한보 사태 재수사 끝에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를 구속했다. 명실공히 검찰이 처음으로 '살아 있는 권력'을 쓰러뜨렸다. 대한민국 역사는 이를 헌정 사상 초유의 일로 기록한다. 당시 중수부장 심재륜(72·사법시험 7회·2001년 부산고검장으로 퇴직)은 둘도 없는 강골(强骨) 검사의 상징이다. 지금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다. 수사와 조직에 하나의 잣대로 엄했고 자신의 유불리는 안 따졌다. 특히 윗사람에게 호되고 노련하고 당당했다. 그래서인지 별명은 '심통'이다. 수뇌부에 밉보여 남들은 피해갈 고초가 심했다.

그로부터 19년, 검찰은 다시 위대한 역사를 썼다. 현직 대통령을 수사하고 공범으로 지목했다. 헌법이 대통령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구속영장도 청구할 기세였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검찰이 길을 내준 덕분이다. 검찰에 인색하기로 이름난 신문들도 이번에는 검찰을 치켜세우기 바빴다.

한보 비리 수사와 국정농단 수사를 견줘 봤다. 우선 닮은 구석이 좀 있다. 처음은 답답하고 못 미더웠지만 그 끝은 대단했다. 시민들은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수사에 불이 붙으니 뒤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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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수사의 차이는 선명하다. 당시 심재륜은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의 노골적인 압력을 받았다. 1997년 3월 28일 그가 대낮에 만취한 대통령 비서실장과 전화로 나눈 대화 내용 중 일부다. "이봐요! 중수부장. 각하가 울고 있어요. 우리 각하가." 4월 7일엔 대통령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이 그를 한 호텔로 조용히 불러냈다. 그는 끝내 참석을 거부했고 수사 지침만 전해 받았다. 당시 민정수석은 이렇게 말했다. "(한보 특혜 대출은) 고도의 정책 결정 아래 이뤄진 일이다." "검찰만 살려는 건가. 우린 다 죽으라는 말인가." 심재륜은 사직서를 품고 계속했다.

이번 수사에선 성역도 압력도 없었다. 애초 검찰은 여론을 따르는 것 말곤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없었다. 대통령을 수사하지 않았다면 검찰은 어찌 됐을까. 그 기세를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도 어쩌지 못했다. 어느 순간 검찰총장이 오히려 성역처럼 보일 정도였다. 대통령 탄핵은 순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한 달을 머뭇거리던 검찰은 왜 갑자기 사나워졌을까. 특별수사본부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기세였을까.

2009년 7월 심재륜이 검찰동우회 소식지에 쓴 '수사십결'을 찾아봤다. 검찰과 수사에 대한 열 가지 당부다. 마지막 열 번째, "칼에는 눈이 없다"는 큰 울림이다. 최근까지 검찰의 수사권이 무소불위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일거에 바뀌었다. 검찰의 수사를 온 국민이 잘 봤다. 이 치명적인 검찰의 매력에 누구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흥분했을 것이다. 당장 다음 정권은 검찰을 어찌 대할까. 궁금하다.

[전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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