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성의 레이더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입력 : 2017.11.13 18:02:27     수정 : 2017.11.14 18: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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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고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사법연수원 23기)가 서울중앙지검 수사를 받다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그날 저녁 급히 차린 빈소에는 고개 숙인 조문객이 가득했다. 한참 동안 다들 숨소리까지 참는 것 같았다. 몇 시간 지나 자정이 가까워지자 고인을 기억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때 당장이라도 실신할 것 같던 고인의 노모가 조문객 앞에 가까스로 걸어나와 사무친 원한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여기 뭐하러 왔습니까." "당장 돌아들 가세요." "내 아들이 무슨 죕니까." "왜 내 아들 구명하지 않았습니까." "남의 일 아닙니다. 곧 다 당신들 일이 될 겁니다."

10분 가까이 사력을 다한 원망이 잦아들자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곧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거센 원망에 차라리 속이 후련했는지 긴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그 눈물과 한숨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다 순간 놀라서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기자는 무슨 수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유족들의 깊은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충격에 빠져 있는 수사 검사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며칠 전 한 변호사의 말이 생각났다. 관점과 방향은 조금 달랐지만 빈소에서의 곤혹스러움과 닿아 있었다. "요샌 기자들이 더 무서워요. 술자리가 벌어지면 누가 나쁘고 무엇이 못마땅한지 앞다퉈 자기 입장을 밝힙니다. 입장 밝히기를 조심스러워하는 기자들을 못마땅해하기도 해요. 이러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요." 기자는 뭘 할 수 있을까. 내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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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호사의 걱정을 곱씹으며 다시 생각해봤다. 아마도 이랬을지 모른다. 그날 그 자리에서 기자이며 관찰자여야 한다는 어정쩡하고 애매한 처지가 유독 불편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잠시라도 어느 한편에 서서 누군가를 향해 눈이라도 흘기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공감하려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비탄과 절망에 빠진 유족들에게 최대한 감정을 이입하려고 노력하면서 좀 남다른 기자인 척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의심도 해봤다.

그래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고인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다들 빈소의 분위기와 조문객의 일거수일투족을 되새기고 자신들의 감정과 처지를 확인했다. 검찰의 앞날도 걱정했다. 어찌하면 달라질지, 달라질 수는 있을지 의견은 엇갈렸다. 그래도 누구를 비난하지는 말자고들 했다.

며칠이 지났다.

기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여전히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빌 것이 또 있다. 사람들이 더 다치지 않으면 좋겠다. 수사받는 사람도 수사하는 사람도. 그들의 몸도 마음도.

[전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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